이코노미조선 칼럼 | 한국 기업은 어떤 리더십을 이어갈 것인가
업체관리자
view : 214
최근 반도체 산업 호황이 수출과 투자를 떠받치며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인구와 시장이 팽창하던 시대처럼 기업의 시행착오를 덮어주던 고도성장기가 다시 돌아오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새로운 기업을 많이 만드는 것 못지않게, 이미 축적한 산업의 경쟁력과 조직의 역량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한국 기업은 변화한 시대 상황과 변화된 구성원의 문화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장기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새로운 리더십 실현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연임이 힘든 4년 임기의 한국 대학 총장은 대학의 혁신을 도모하기 힘들다. 지도자에게 비전을 실현할 권한과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미국의 성공한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대부분은 천재 창업자가 오랜 기간 최고 경영자로서 절대적이고 혁신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
면적이 좁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 토지와 주거는 사회 안정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리콴유 정부는 강력한 국가권력으로 토지와 주택을 강제 배분하고 대규모 공공 주택을 공급함으로써 주거 불만을 권위주의적 리더십 안으로 흡수했다. 그러나 리콴유 이후에도 그의 후손과 측근으로 권력이 승계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 과거의 리더십이 모든 시대에 그대로 부합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의 중앙집권적 리더십 역시 고도성장기에 자원을 집중하고 장기 정책을 추진하는 데 유효했다. 국가와 기업은 구성원, 정당성의 근거, 책임 구조와 작동 방식이 다르므로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 모두 특정 시대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유효했던 리더십 형태를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수하는 경우 과거와 동일한 성과를 얻기 힘들다.
한국 기업의 가족 승계 리더십은 고도성장기의 산업 과제와 한국의 문화가 맞물려 형성되었다. 대기업뿐 아니라 상당수 기업이 혈연을 근간으로 경영권과 책임을 세대간에 이어왔으며, 그중 적지 않은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가족 승계는 가족이 조직의 운명을 장기간 책임진다는 인식과 관계의 지속성, 충성과 헌신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와 부합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혈연에 기반한 리더십은 단기간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사업도 다음 세대까지 추진할 시간과 책임 주체를 제공했다. 수십 년간의 투자와 기술 축적이 필요한 제조 산업에서 이러한 장기성은 탁월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과거의 성과를 이유로 미래에도 여전히 세습과 사적 지배가 유효한 방법이라 기대할 수는 없다.
리더십의 연속성이 반드시 혈연일 필요는 없다. 골드만삭스의 전통적인 파트너 지배구조에서는 파트너가 회사의 공동소유자로서 자기 부문의 성과만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손익과 평판까지 함께 책임졌고, 회사는 창업 후 지난 15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정보를 폭넓게 공유하고 중요한 결정을 합의하는 과정은 의사 결정 속도를 늦출 수 있지만, 소수 지도자가 불완전한 정보에 의존해 치명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줄였다. 법적 소유 구조는 1999년 상장 이후 달라졌지만, 파트너 집단이 공동으로 책임지고 의사 결정을 하는 문화는 상당 부분 이어지고 있다. 파트너십 지배구조는 미국 문화의 장점인 자유와 수평적 관계를 기업 문화로 수용한 결과다. 한국 기업의 가족 승계 리더십과 골드만삭스의 파트너십은 서로 다르지만, 소유와 책임을 장기간 결합하고 조직 문화를 다음 지도자에게 이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기업의 바람직한 리더십에 대한 논의는 가족 승계와 전문 경영인 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단순함을 넘어선다. 정부와 경영자, 노동자가 함께 참여하는 독일식 지배구조와 리더십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역사와 지형이 낳은 국민의 사고 체계, 기업의 당면 과제와 미래 비전, 산업 전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고유한 리더십을 만드는 일이다. 이제 한국 기업에 맞는 리더십을 새롭게 구축하고, 이를 어떤 제도와 방법으로 이어갈 것인지 찾아야 할 때다.

신동우 나노 회장 - 케임브리지대 이학박사, 현 한양대 총동문회장
Copyright 조선비즈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