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칼럼 | 테크놀로지의 경쟁력이 강대국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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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25년 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의 경제 비전이 중소기업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권위 있는 민주적 지도자였다. 미래를 염두에 둔 합리적인 대안을 현실에서 찾았다. 김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 후, 1993년 영국 대학에 6개월간 머물 때였다. 유학생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카프카의 ‘변신’을 화두로 아침에 일어나니 벌레로 바뀐 감옥 생활을 이야기하며 인생관을 설파했다.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깊은 지혜에 감동했다.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과도한 빚을 내어 투자한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약속을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차입을 늘려 규모를 키워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대우는 경제 관료의 제동에 걸려 결국 해체됐다. 이후 사석에서 김우중 회장에게 “왜 망하셨나요?”라고 당돌히 묻자 “우리나라 경제 관료의 권한이 그렇게 막강한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김 대통령은 창업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국립대 실험실을 공장으로 등록할 수 있게 하고,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 교수가 창업 기업 대표를 겸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학 특허를 창업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이러한 규제 개혁 덕분에 나노 역시 창업할 수 있었다. 또한 코스닥 시장을 개설해 창업 열기를 확산시키고, 정보화 사업을 통해 전국에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소기업 육성과 지역 균형 발전에 진심이었다. 신제품 인증을 받은 중소기업 제품을 공기업이 구매하면 공기업 경영자의 평가에 가점을 부여했다. 이 제도 덕분에 나노가 개발한 제품을 한국전력에 공급할 수 있었다. 당시 정부 부처에는 상생협력과가 신설되었고, 산하 공기업과 대기업에도 상생 협력을 촉진하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중소기업인이 정부나 공기업을 찾아가 먼저 호소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 것이다. 약자를 배려하려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폐지하고 ‘저탄소 녹색성장’ 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다. 원자력과 태양광발전 사업을 장려했고, 4대강 사업을 통해 건설 경기를 부양했다. 대기업 중심 정책의 낙수 효과로 중소기업도 혜택을 볼 것이라는 기대가 제시됐다. 상생 협력은 동반성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정책의 중심도 대기업으로 이동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국가 비전으로 내세웠다. 지역 거점 대기업이 중심이 되어 각 지역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모델이었다.
그러나 창조경제의 개념과 방향은 끝내 대중에게 명확히 전달되지 못했다. 이후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대기업은 대부분 빠져나갔고, 현재는 국비와 지방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우리 경제는 성장했지만, 사회 양극화는 심화했다. 강남 3구와 특목고 출신 등 기득권층 자녀가 주요 자리를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시험을 통한 선발 방식도 더 이상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게 되었다. 보수적인 엘리트 카르텔이 각 분야에 공고히 자리 잡았다.
유아기부터 고가의 사교육을 받고 명문대를 졸업한 전문직 인력은 인공지능(AI)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AI는 교육과 직업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AI가 가져올 기술혁신과 사회 혁신은 기득권 카르텔과 사회 양극화를 무너뜨릴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21세기 첫 25년 동안의 시행착오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법은 찾았다. 다음 25년에는 시대정신에 맞는 대통령의 미래를 내다본 통찰과 현실적인 리더십을 기대한다.

신동우 나노 회장 - 케임브리지대 이학박사, 현 한양대 총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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